조선후기 방랑시인 난고 김병연(1807~1863).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지팡이를 짚고 흰 겹옷자락을 휘날리며 전국각지를 유랑하면서 풍자와 해학이 담긴 수많은 명시를 남긴 그는 본명보다는 ‘김삿갓’으로 불린다.

김삿갓의 출생지는 경기도 양주, 마지막 숨을 거둔 종명지가 있는 곳은 전라남도 화순, 묘역이 있는 곳은 강원도 영월이다. 김삿갓의 종명지는 30여년만에 일반인에게 개방돼 화순의 대표 관광지로서의 명성을 되찾고 있는 화순적벽을 둘러싸고 있는 옹성산이 바라다 보이는 화순군 동복면 구암마을이다.

김삿갓의 시 중에는 화순에 머물며 화순의 적벽과 무등산을 노래한 시들도 많다. 김삿갓의 시들로 유추할 때 김삿갓은 생전에 세차례 이상 화순을 방문했고, 숨을 거두기 전 6년간 동복 구암마을에서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소한 세차례 화순방문
1841년 김삿갓은 ‘무등산이 높다더니 소나무 가지 아래에 있고(無等山高松下在)/적벽 강이 깊다더니 모래 위에 흐르는구나(赤壁江深沙上流)’라는 시를 남겼다. 1850년에는 구암마을 인근 망미대와 동복 관아의 협선루에서 시상을 얻은 풍류시를 남겼다. 그 시비는 현재 동복면사무소 앞에 세워져 있다.

화순군은 김삿갓이 1857년부터 동복에 정착해 1863년 3월 29일 숨을 거둘 때까지 말년을 구암마을에서 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김삿갓의 종명지 주변을 관광명소로 개발하기 위해 20여억원을 들여 구암마을에 김삿갓 유적지 복원사업을 추진했다.

▲마지막 숨 거둔 구암마을
구암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수백년은 족히 됐을 법한 나무 그늘아래 두 개의 김삿갓 시비가 반긴다. 맞은 편에는 삿갓동산이 조성돼 있다. 삿갓동산에는 김삿갓이 생전에 쓴 50여개의 시가 비석에 새겨져 있다.

김삿갓이 화순적벽을 둘러싸고 있는 옹성산을 바라보고 있는 동상도 세워져 있다. 잘 다듬어진 산책로 사이 동산 곳곳에는 정자와 나무의자, 그네 등 잠시의 쉼과 즐김을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삿갓동산 맞은편에는 김삿갓이 생을 마감하기 전에 머물렀다는 안채와 사랑채 등으로 이뤄진 창원 정씨 문중의 종갓집이 보전돼 있다. 이 가옥은 화순군이 김삿갓 유적지 복원사업을 추진하면서 정씨 문중으로부터 매입한 것이다.

▲김삿갓 초분지와 망미정
구암마을 뒤편에는 김삿갓의 시신이 강원도 영월로 이장되기 전 3년간 묻혀 있었다는 초분지가 있다. 김삿갓이 정씨 문중 사랑채에서 1863년 57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정씨 문중에서 나서서 그의 시신을 매장했던 곳이다.

초분지는 동뫼등(동산)으로 불린다. 천한 송장이 많이 묻혀 있어 더럽다는 뜻으로 비하해 ‘똥묏등’이라고도 불렀다. 구암마을에서는 연고가 없는 사망자가 발생하면 동뫼등에 시신을 매장해 왔다고 전해진다.

초분지 인근 와우산 정상 망미정에도 김삿갓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거북이의 형상을 닮았다는 와우산은 빽빽하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는 나무들로 울창하다. 나무들 사이에는 곳곳에 나무의자들이 놓여 있어 잠시의 쉼을 유혹한다. 잘 다듬어진 등산로를 따라 와우산 정상에 오르면 망미대와 망미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망미정에서는 멀리 옹성산과 동복면소재지, 가까이는 구암마을과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된 연둔리 숲정이가 보인다. 옹성산은 화순적벽 중에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노루목적벽(장항적벽)’과 보산적벽을 감싸고 있는 산이다.

▲임금의 안위를 걱정한 망미대
망미정 아래에는 사자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위치해 있다. 사자바위에는 정씨 문중의 후예인 정시룡 선생이 ‘망미대’라고 새긴 글씨와 연대가 또렷하게 남아 있다. 정시룡 선생은 김삿갓의 장례를 주선하고 그의 유해를 김삿갓의 후손에게 인계한 인물로 전해진다.

망미대는 정시룡 선생이 임금이 있는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임금의 안위와 나라를 잘 다스리기를 기원한 충정이 담겨 있는 곳이다.

▲아름다운 숲 연둔리 숲정이
구암마을 맞은편 연둔리 숲정이는 수백년은 족히 넘은 울창한 숲이 싱그러움을 뽐내는 곳이다. 숲정이는 동복천을 따라 1km에 걸쳐 남북으로 길게 왕버들, 느티나무, 서어나무, 검팽나무 등 230여 그루의 아름드리 나무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숲을 이루면서 찾는 이들이 많다.

김삿갓이 반해 시로 노래한 화순적벽 중의 장관으로 꼽히는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은 화순적벽버스투어를 통해 볼 수 있다. 화순적벽버스투어는 화순군청 누리집을 통해 인터넷 사전예약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구암마을에서 동복면소재지를 지나 노루목적벽을 가두고 있는 동복댐을 따라 이서면 창랑리 물염정에 이르면 언제든지 화순적벽 중의 일부인 물염적벽과 창랑적벽을 감상할 수 있다. 물염정 인근에도 김삿갓의 시비와 석상이 세워져 있다.

김삿갓이 마지막 숨을 거둔 구암마을 창원 정씨 가옥.

삿갓동산의 김삿갓 시비들.

구암마을 인근 와우산의 망미정과 김삿갓의 시비.

빽빽한 나무들로 우거진 와우산. 위로 망미정과 망미정이 위치한 사자바위가 보인다.

박미경 기자 mkp0310@hanmail.net        박미경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