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난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주방에 있는 라디오를 켜는 일이다. 라디오를 켜놓고 아침을 준비하면서 뉴스도 듣고 하루를 시작하는 경쾌한 음악을 듣기도 한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는 비가 올 것이라고 한다. 오늘 비가 온다면 산과 들을 아름답게 물들인 단풍도 가을비에 떨어져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지 못할 것 같아 단풍구경을 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로 갈 것인가? 어디를 가야 도로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고 소중하게 시간을 쓸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이고 단풍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백양사로 행선지를 정했다. 백양사에 가서 애기단풍을 만나고 오겠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졌다. 서둘러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아침 여덟 시 삼십 분에 백양사로 향했다.

출근시간도 지나고 토요일이라 도로는 비교적 한가했으며, 아침에 급하게 서둘렀던 것과는 달리 마음이 부자가 된 것처럼 여유까지 생겼다. 동광주 톨게이트를 지나고 고속도로로 들어서니 눈에 보이는 산은 노랗고 빨갛게 물이 들어 부끄러운 새색시 얼굴처럼 화사한 꽃들이 가득 핀 것 같다.

멀리 장성댐이 보이고 얼마 가지 않아 고불총림 백양사로 들어가는 도로 양쪽에 붉게 물든 애기단풍이 환하게 웃고 있다.

백양사 입구로 들어선다. 온통 붉게 도색 된 애기단풍을 바라보니 내 몸도 붉게 물이 드는지 온몸이 뜨거워짐을 느끼게 된다. 칠백 년 정도 되었다는 할아버지 갈참나무 곁을 지나서 올라가니 애기단풍들 할아버지 갈참나무에게 재롱이라도 피운 듯 온몸이 빨갛게 달아올라 땀이라도 흘린 것 같다.

애기단풍에 도취하여 한참을 올라가니 각진대사의 지팡이가 이팝나무로 변했다는데…… 부활이란 꽃말이 무색할 정도로 애기단풍에 가려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백양사 경내로 들어서기 전 부도탑이 내려다보이는 쌍계루에 올라앉으니 애기단풍은 더욱더 붉고 아름답다. 먼 옛날 백양사를 찾은 정몽주가 백양승을 만나 “시를 쓰라 청하는데/붓을 잡고 생각하니/ 재주 없음이 부끄럽구나”라고 백양사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고 한다는데 나는 눈으로 볼 수 있음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백양사는 14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백제시대 고찰로 백제 무왕 때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명찰로 본래 이름은 백암사였고 조선 선조 때 환양선사가 영천당에서 설법하는데 흰 양이 내려와 설법을 들었다 하여 백양사로 이름을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백양사 경내로 들어가기 전 일제 강정기 때 농사나, 감, 대나무 바구니 등을 팔아 직접 절을 지었다는 만암스님의 비석에 “이 뭣고?”라는 글귀가 들어온다. 이것이 무엇인가? 또는 나는 누구인가?와 유사하다고 하는데 나는 누구이기에 이곳까지 와서 이렇게 서성이는가? “이 뭣고”를 화두처럼 가슴에 새긴다.

사천왕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들어서니 촉촉한 땀이 등을 적셔도 모르는지 열심히 기도하는 보살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 보살을 바라보노라니 갑자기 백팔 배가 하고 싶어져 신발을 벗고 대웅전에 들어가 가방에 넣어둔 백팔 염주를 꺼내들었다. 내 기도는 항상 무엇인가를 원할 때 또는 마음이 편치 못하여 안정을 요할 때 했는데 오늘의 기도는 이유가 없어도 좋다.

절을 한 번 할 때마다 염주 알을 굴리고 절을 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내 머릿속은 텅 빈 듯 아무 생각 없이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삼십년이 넘은 이 염주가 나의 수호신처럼 나를 지켜 주듯이 내가 사는 동안 내 기도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기도가 끝이 나고 대웅전을 나서니 붉은 산이 빙그르르 내 주변을 돈다. 대웅전 뒤쪽에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듯한 학바위에 붉게 물든 단풍과 함께 개미처럼 작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 다음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백암산 정상에 올라 학바위를 보고 싶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경내를 돌아 나오는데 그 사이 단풍구경 온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많아졌다. 물이 고인 계곡에는 떨어진 애기단풍잎이 붉은 꽃잎처럼 겹겹이 쌓여 물인지 바위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단풍의 아름다운 색깔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사진에 담아두는 방법도 좋겠지만, 마음에 담아두어 보고 싶을 때 가끔 꺼내보는 일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 사진은 찍지 않기로 한다.

사진을 한 번 찍을 때마다 애기단풍이 빛바랠까 두렵기 때문이다. 또한 애기단풍이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서 붉게 오래 남아 따뜻한 마음을 간직할 수 있는 겨울을 보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 隨筆약력 -
․ 화순초등학교 60회
․ 2008년「현대수필」 등단
․ 2008년「열린시학」 등단
․ 저서 시집『물고기자리』,『엄마의 재봉틀』
․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 현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전담강사
․ 현대수필문인회원
․ 한국작가회원
․ 동천문학상, 열린시학상 수상


화순일보 mire537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