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정도란 무엇일까? 무슨 대단한 화두라도 붙잡은 듯 머릿속이 복잡하던 어느 날 카톡으로 날아든 메시지에 삶의 정도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다. 윤석철 교수의 『삶의 정도』 책을 인터넷으로 주문해 놓고, 책을 읽을 생각에 가슴 설레며 기다리고 기다렸다.

드디어 도착한 책은 두꺼운 하드 본 표지로 되어 있었다. 설레었던 마음과는 달리 책을 사놓고 게으름을 피우느라 오십 페이지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침대 끝에 놓아두고 읽어야지 하는 생각만 뒤척였다.

삶이 무기력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심심하면 인터넷으로 오래된 영화를 찾아보았다. 새벽이 오도록 지쳐 쓰러질 때까지. 눈가에는 주름살만 늘어가고 마음에는 골이 깊어져 혼자서 허우적거리는 날들을 보냈다. 책은 침대 귀퉁이에서 먼지가 쌓이고 혼자서 설레었던 마음은 저절로 서서히 사그라들던 어느 날이었다.

침대 앞에 놓인 책상 위의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입이 궁금하여 밖으로 나갔다. 냉장고를 열고 사과를 꺼내 먹기 좋게 잘라 포크와 같이 접시에 담았다. 접시를 들고 방으로 들어와 침대 위로 올라서는 순간 털털하고 조심성 없는 내 발이 두꺼운 하드 본 표지『삶의 정도』에 부딪혔다. 순간 눈물이 났다. 아픔의 눈물, 너무 아파서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작은 새끼발가락에 통증이 몰려왔다.

신발을 신을 때면 불편하고 많이 걸으면 약간 아프기도 했다. 일주일이 흘러가도 크게 차도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좋아지려니 하다가 아무래도 이상하여 그동안 방치해둔 새끼 발가락을 살펴보니 발가락이 좀 부어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인대가 늘어나서 그럴 수도 있다고 나와 있었다. 이대로 놓아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십여 일 후면 도보를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아무래도 방치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병원에 도착했다. 목발을 짚은 사람, 발목에 붕대를 한 사람, 발에 붕대를 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순간 너무 오래 방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끼발가락에 문제가 생겼다면 만약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금이라도 갔다면 발가락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발가락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교정을 하면 신발은 어떻게 신어야 할 것인지. 운전은 어떻게 할 것인지. 접수를 하고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길어서 홀로 앉아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의사 선생님이 발가락을 보자고 해서 발을 올려놓으니 발가락을 만지는데 그동안 아프지 않던 발가락이 갑자기 통증이 심해졌다. 다친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왜 다쳤는지? 경위를 묻더니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발가락이 금이 갔는지 다른 원인인지 알아보자고 했다.

엑스레이실에서 엑스레이를 4컷 정도 찍는데 기분이 묘했다. 살다가 발가락 엑스레이도 찍게 되는구나 하니까 좀 마음이 이상해졌다. 다행히 확인 결과 염증이 생긴 것 같다고 주사 맞고 일주일 분 처방만 받고 돌아왔다.

저녁 늦게 냉찜질을 해서 부기를 빼라고 하던 의사 선생님 말씀이 떠올라 발가락을 냉찜질하다가 아버님이 떠올랐다. 몇 달 전 그냥 아프다고만 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셨는데 연세도 있고 기력이 쇠하시니 그런가 보다고 하다가 병원 가는 일을 차일피일 미루셨다. 시골 사람들은 당신이 의사라고 생각하고 시간이 가면 자연적으로 치료가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좀 심한 편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살펴보니 다리가 부어 있어서 급하게 병원 응급실로 가게 되었고 확인 결과 고관절 골절이었다. 겨우 새끼발가락 염증 때문에 병원 문을 두드렸는데, 그 순간에야 비로소 아픔을 표현도 못하신 아버님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생길 때 상대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한다. 하지만 상대를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그 처지가 되어보고 깨달아야 진정으로 이해한다고 했던가? 나도 그랬다. 아버님의 고통이 어느 정도였을지 겨우 조금 개미 눈물만큼 헤아렸다.

한쪽에 놓여 있는 『삶의 정도』책이 눈에 띈다. 삶의 정도는 과연 무엇일까? 삶의 정도를 생각하다가 『삶의 정도』를 사놓고 방치했다. 그러다가 『삶의 정도』에 다쳐 통증을 느끼면서 삶의 정도를 생각해본다. “인간다운 삶은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떻게 완성되는가. 삶의 정도는 생존경쟁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기 삶의 길을 떳떳하게 갈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쓰여 있다.

삶의 정도, 어쩌면 삶의 정도 앞에 얼마나 떳떳한가. 내 삶을 반성해보라고 『삶의 정도』는 새끼발가락에 염증이란 통증을 안겨주지 않았을까. 늦었지만, 이제라도 깨달으라고 기회를 준 책장을 넘긴다. 내 삶의 무게에 대해 오늘은 좀 더 가벼워지기로 한다.

- 隨筆약력 -
․ 화순초등학교 60회
․ 2008년「현대수필」 등단
․ 2008년「열린시학」 등단
․ 저서 시집『물고기자리』,『엄마의 재봉틀』
․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 현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전담강사
․ 현대수필문인회원
․ 한국작가회원
․ 동천문학상, 열린시학상 수상


화순일보 mire537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