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엔딩’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마치 벚꽃이 핀 것처럼 피지도 않는 꽃잎이 눈앞에 그려진다. 벚꽃이 피어나자 가슴에 봄바람이 분다. 울렁증이 생기고 그 바람이 잠잠해질 때까지 내 마음이 흔들린다. 봄마다 찾아오는 벚꽃이 오랜 시간 나를 길들인 모양이다.

이제 벚꽃이 지고 나무는 붉은 빛을 달고 있다. 벚꽃이 피었다 진 흔적이다. 꽃과 교감을 나눈 적은 없지만,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벚꽃과 내 마음을 묶어 두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해마다 피는 꽃인데 이유 없이 마음 한 자락 흔들리겠는가. 분명,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것처럼 설명할 수 없는 세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꽃 진 자리에 버찌가 열리는 것처럼 내 마음의 나무에도 동그랗게 궁금증이 열린다.

나를 흔들어 놓는 ‘벚꽃’이란 단어가 나를 길들인 탓은 아닐까? 중얼거리다가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한 말 ‘길들인다’는 단어가 떠오른다. 오래전에 읽었던 『어린왕자』를 얼마 전 아시는 스님이 선물로 주셔서 다시 읽게 되었는데 그 기억이 오랫동안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황금빛 머리카락을 지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밀밭은 내게 아주 근사한 광경으로 보일 거야. 밀밭이 황금물결을 이룰 때 네가 기억날 테니까. 그러면 나는 밀밭을 스쳐 지나는 바람 소리마저도 사랑하게 될 거야.”라고 여우는 말했다.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밀밭이 황금물결을 이룰 때 네가 기억날 테고, 밀밭을 스쳐 지나는 바람 소리마저도 사랑하게 될 거라는 여우의 말은 언제 읽어도 심금을 울리는 말이다. 지금은 군대에 간 아들은 벚꽃엔딩을 입에 달고 살았다. 샤워를 할 때도 걸어다닐 때도 나는 아마도 그동안 아들의 목소리로 들은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로 시작하는 벚꽃엔딩’에 길들여진 모양이다. 그래서 ‘벚꽃’이란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흔들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우는 비밀 하나를 알려준다면서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거야.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고 했었다. 또한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너에게 그토록 중요한 것은 네가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그 진리를 잊어버린다고,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된다고,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으니까. 너는 내 장미를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길들면 눈물 흘릴 일이 생긴다는…….

삼월이 시작되고 얼마 후에 아들이 군에 입대했다. 대한민국에 남자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군에 입대를 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들을 훈련소에 입소시키는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심란스러워졌다. 아들이 대한민국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요즘 말로 빽이 좀 있다면, 기왕이면 좀 더 편한 곳에서 아들이 근무할 수 있다면, 뭐뭐 한다면, 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을 훈련소에 입소시키고 돌아와서도 안절부절하게 되었다.

그 동안 아들에게 들인 시간에 나도 모르게 길들여진 모양인지, 벚꽃이 피기 전부터 ‘벚꽃엔딩’ 노래가 들리고 자꾸만 아들이 그리워졌다. 엄마로서 아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도 생각이지만, 아들이 훈련을 잘 받고 있는지, 봄이면 코피로 몸살을 앓는데 코피는 나지 않는지, 이런 저런 이유로 아들의 안부가 궁금했었다.

그 사이 몇 번, 아들이 찍은 사진이 육군 훈련소 홈페이지에 올라오고 그 속에는 벚꽃 앞에서 찍은 사진도 있었다. 콜렉트콜 전화가 왔을 때 군대에 ‘벚꽃도 있네’라고 했더니 아들은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할 만 하다고, 오히려 내 염려를 뒤로한다.

드디어 6주간의 훈련이 무사히 끝나고 수료식날 아들 면회를 갔다. 다행히 아들은 혈색이 좋아 보였다. “아들! 군대 생활이 체질에 맞나 보네”라고 했더니, 잘 먹고, 잘 자고, 건강하게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한다. 아들은 군대가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훈련방식도 개선되었다면서 오히려 위로를 해주는 것이 마음으로 느껴진다.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거야.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고 말한 여우의 말처럼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음으로 느껴야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 “느낌 알잖아”라는 개그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우스갯 소리로 넘기기에는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었음을 알고 있다. 어떤 대상을 보거나 사람을 만났을 때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느낌이란?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마음이 느끼지 못하면 진심이 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들! 상대가 느낌으로 알 수 있게 마음으로 진심을 다하면 마음으로 볼 수 있을 거야. 보이지 않는다고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란다.” 혼자말로 중얼거렸지만 그동안 서로에게 길들여진 시간이 있었으니까 아들은 이해를 하리라. 누군가에게 길들면 눈물 흘릴 일이 생긴다는 것처럼 군대 생활에 길들여지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에게 내 책임이 따르는 것처럼 아들도 제 임무에 대해 책임을 지고 열심히 할 것을 믿는다.

아들의 자대배치를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아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어서 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아들의 군대 생활이 활기차고 의미가 있는 일상으로 채워지길 기도한다.

벚꽃이 졌는데도 거리에선 ‘벚꽃엔딩’이 흘러나온다. 그 노래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마음이 흘러 나와 거리를 누비고 다니는가보다. 붉은 버찌가 검게 무르익는 데는 시간이 흘러야 하듯, 마음의 눈을 기르는 일도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군 복무가 아들에게는 그런 시간이 되리라. 아들! 마음의 눈을 기르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을 믿는다.

- 隨筆약력 -
․ 화순초등학교 60회
․ 2008년「현대수필」 등단
․ 2008년「열린시학」 등단
․ 저서 시집『물고기자리』,『엄마의 재봉틀』
․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 현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전담강사
․ 현대수필문인회원
․ 한국작가회원
․ 동천문학상, 열린시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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