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뭐 먹을 거야?” 라고 묻는 아들의 질문은 늘 어렵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너는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으니 아들도 무엇을 먹을 것인지 고민이라고 한다. 마침 거실 좌탁에 놓여 있는 굴뚝빵 전단지가 눈에 띈다. 그럼 우리 오늘은 간단하게 굴뚝빵을 먹자고 하면서 아들에게 사 오라고 했다. 아들도 무슨 맛인지 먹어보자면서 굴뚝빵을 사러 갔다. 한참 후에 전화를 해서 오늘은 일요일이라 빵가계가 쉰다고 한다. “동유럽에 가지 않고 화순에서 먹을 수 있다”는 전단지를 보고 굴뚝빵을 먹겠다고 자신 있게 집을 나선 아들은 맥이 풀려 빈손으로 돌아왔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는 늘 고민이다. 어른이 되면 달라질 줄 알았다. 무엇을 만들어 가족들에게 먹게 할 것인가는 세상에 태어난 이상 피해갈 수 없는 화두처럼 나를 따라 다녔다. 내가 처음 가족들이 먹을 밥을 지은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는 산골마을이라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아서 지금처럼 전기밥솥을 쓸 수도 없었고 당연히 가스도 없어서 가스 불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아궁이에 성냥으로 불을 피워 가마솥에 밥을 지어야 했다. 지금 같으면 아동학대 죄로 고발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 몸보다 더 큰 아궁이에 힘겹게 불을 피워 밥을 했다. 국을 끊이고, 텃밭에 나가 반찬거리를 뜯어와 반찬도 만들었다. 이런 일들을 일상처럼 했다. 때론 돌확에 고추와 양념을 갈아 김치를 담그어야 했다. 고무장갑도 없던 시절이라 김치를 한 번씩 담고 나면 고사리 손에 붉은 물이 들고 아렸다. 부모님은 농사일로 늘 바빴고,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다.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보릿고개가 있었다. 동생들은 다섯이나 되었다. 언젠가는 밥을 짓고 반찬을 해 두었는데. 저녁이 되어도 부모님은 오시지 않고 동생들은 배가 고파 반찬이라도 집어 먹고 싶어 했다. 그 일로 동생과 죽도록 싸웠던 일도 있었다. 배가 고픈 동생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기도 힘들었지만, 한 끼 반찬 만들어 한 끼 먹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반찬을 동생이 먹어버리면 먹을 반찬이 없었다. 그런 것들을 설명해 줄만큼 나 역시 성숙하지도 못했다. 두 살 터울의 동생이나 나나 우리는 모두 어렸다.

어린 마음에 밥하기도 싫었고, 반찬 만드는 일도 싫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가 밥을 해놓고 ‘누구야 밥 먹어라’고 부르는 일은 내게 없었다. 내가 밥을 해놓고 오지 않는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알약이 있어서 밥 같은 것은 해 먹지 않고 살아도 되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해가 서산으로 지도록 뛰어놀고 싶었고,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드는 일은 나와 상관없는 일처럼 그렇게 살고 싶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내 의지대로 그런 일은 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어른이 되었지만 사람이 무엇을 먹는다는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그 문제를 풀 수는 없을 것이다. “잡식 동물의 딜레마”의 작가 마이클 폴란은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라는 문장으로 글을 시작한다. 음식문화와 삶의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책이다.



옥수수가 단순한 옥수수가 아니라 사료로 고기로, 음료수로 변신한다. 산업화된 옥수수 농장과 결국 사육 농장은 결국 맥도날드와 연결되어 있다. 왜 옥수수가 중요한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음식문화와 연결되어 있기에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얼마 전 방송 프로그램의 고발로 ‘대만 카스테라’를 만들었던 빵가계들이 피해를 입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인기만을 누리는 방송 프로그램의 잘못된 관행이 문제가 된 것은 사실이다. 매출이 하루아침에 줄어드니 문을 닫는 업체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문을 닫지 않았던 그 가계가 카스테라만 만들던 단일품종에서 굴뚝빵을 추가로 만들어 광고 전단지를 돌린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고민해야 할 문제인것처럼 신청자들의 판단도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우리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된 ‘보스턴 차 사건'처럼 무엇을 먹을 것이냐에 따라 이 시대의 삶까지도 흔들린다. 이제 세계는 하나로 연결된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어느 곳 한 군데가 어긋나면 전체가 어긋나는 삶의 구조로 돌아가고 있다. 한 나라의 이기적인 행동이 다른 나라에게 피해를 주겠지만 결국은 돌고 돌아 그 나라에도 피해가 돌아가게 될 것을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세계가 움직여 왔고, 또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저녁에 뭐 먹을 거야?”라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뭐 먹을 것인가 고민하는 사이 나를 뒤돌아본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라는 불교의 오관게가 생각난다. 식사에 대한 고마움을 일깨우는 게송이다. 오늘 저녁이라도 내 덕행으로 부끄럽지 않기를 두 손 모은다.


- 隨筆약력 -
․ 화순초등학교 60회
․ 2008년「현대수필」 등단
․ 2008년「열린시학」 등단
․ 저서 시집『물고기자리』,『엄마의 재봉틀』
․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 현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전담강사
․ 현대수필문인회원
․ 한국작가회원
․ 동천문학상, 열린시학상 수상



화순일보 mire537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