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00야! 오늘은 0월 0일이고 며칠째 되는 날이야!
아들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디테일하게 하루하루의 일정을 시간대별로 적어 놓아서 편지를 읽는 순간 궁금증과 걱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집에 있는 것보다 더 좋고, 더 잘 먹고, 잘 있다는 말을 정말로 믿었다. 순진한 엄마였다. 아니면 그렇게 믿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남자들은 만나면 군대 이야기하느라 날 새고, 그것 아니면 군대 가서 축구 한 이야기하느라 날 샌다고 들었다. 여자들은 젊을 때 애인 군대 보낸 이야기로 날 샌다고 하는데 나이가 어느 정도 먹고 보니, 이제는 아들 군대 보낸 이야기, 수료식 간 이야기로 날을 새는 것 같다. 너무도 애틋해서 보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고 눈물 콧물 흘리면서 말이다.

군대 입영식 날은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었다. 아들을 데려다주러 가는 동안 비는 오지 않았다. 비가 올 듯 말 듯, 하늘이 흐리긴 했다. 입영식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후드득 비가 내렸다. 멈출 듯 멈추지 않고 빗발이 굵어졌다. 입영장에 서 있는 훈련병들은 비를 쫄딱 맞고 서 있었다.

하필 울고 싶은 부모들이나 훈련병들 마음에 생채기를 하나 더 올려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려왔다. 입대식을 하는데 빗소리에 아무 말도 들리지 않고 하늘이 원망스러워 여기저기서 애틋한 신음소리만 이어졌다. 그리고 입영식이 끝날 때쯤 거짓말처럼 는개비로 변했다. 이게 뭐야? 이럴 거면 비나 내리지 말지 하늘이 야속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입영식이 끝나고 부모들과 함께 훈련병들이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아무리 찾아도 다른 훈련병들도 아들처럼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찾지 못했다. 많은 훈련병들과 함께 있어도 식별이 가능할 수 있도록 빨간색을 입혀서 왔어야 했는데 잘못했다.

큰 아들 때는 빨간색 옷을 입고 와서 금방 눈에 띄었었다. 들어가기 전에 아들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생활관 입구로 무작정 뛰어갔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오로지 아들 얼굴을 한번만 더 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훈련병들은 입영장에서 지역별로 서 있었는데 훈련병들이 다 들어가도록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빨리 달려가 앞에서 기다렸는데 아직 들어갔을 리 없는데 오만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체념을 하고 돌아가야 하나, 마지막까지 기다려야 하나 갈등하는 사이 다른 지역 푯말이 들어가고, 훈련병들의 행렬이 다 끝나가고 있었다.

눈앞에 거짓말처럼 아들이 나타났다. 다른 지역 푯말 뒤에 있다가 늦게 들어가게 된 것이다. 아들! 생이별을 하는 마음으로 아들을 부르면서 훈련 잘 받고 수료식 때 만나자고 말하고 안아주면서 헤어졌다. 멀리 계단으로 사라지는 아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 수료식 날을 기약하고 돌아왔었다.

훈련병으로 들어가고 바로 다음날부터 인터넷에 훈련병들의 사진과 소식이 올라왔다. 간단한 건강검진을 한다는 것과 검진 결과에 따라 돌려보낼 수도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보내 놓고도 걱정이 앞섰다. 건강검진 결과가 안 좋아서 되돌아오면 어쩌나? 그래도 군대에 갔으니 복무는 마치고 와야 하지 않나? 마음이란 것이 하루에도 수십 번 변했다.

사진이 올라오면 아들의 얼굴을 찾았고, 얼굴이 야위어 있으면 걱정이고,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또 걱정이고, 아들 얼굴이 없으면 더 걱정되는 시간들이 흘러갔다. 날마다 108배를 하면서, 인터넷 편지를 썼다. 시간은 천천히 갔다. 몇 번의 편지가 오고, 소포를 보내고, 오지 않을 것 같은 수료식 날이 드디어 왔다.

수료식 날은 다행히 날씨가 쾌청하고 좋았다. 정모 수여를 하려고 아들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것을 꾹 참았다. 훈련병들에겐 10박 11일이란 특별휴가가 주어졌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군대 역사상 이런 일은 없었고 앞으로 없을 일이 훈련병들에게 선물처럼 주어졌다. 살다가 이런 행운도 아들이 가질 수 있음에 감사했고,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오는 동안 그동안 누리지 못한 좋은 일이 한꺼번에 주어진 것 같아 꿈만 같았다.

훈련하면서 고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집으로 향했다. 아들은 상위 20% 안에 들면 원하는 지역을 골라 갈 수 있다고 해서 최선을 다해 훈련에 임했고, 원하는 곳으로 배정받게 되었다고 했다. 특별휴가를 끝내고 다시 군 복무를 위해 후반기 교육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들은 군 복무를 잘 마치고 훌륭한 사나이가 되어 사회로 돌아올 것을 안다.

‘군대는 인생 성공의 블루오션’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국민으로 사는 동안에는 누구나 군 복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나라도 군 복무에서 자유로워져서 누구나 보내고 싶은 곳이 되기를 기도한다. 부디 모두에게 자유로운 그런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 隨筆약력 -
․ 화순초등학교 60회
․ 2008년「현대수필」 등단
․ 2008년「열린시학」 등단
․ 저서 시집『물고기자리』,『엄마의 재봉틀』
․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 현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전담강사
․ 현대수필문인회원
․ 한국작가회원
․ 동천문학상, 열린시학상 수상

화순일보 mire537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