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샘솟는 사월, 화순 천년고찰 쌍봉사와 마주한 ‘이불재’에 기거하며
깊은 ‘불연’으로 부처를 닮아가는 삶을 실천하는 소설가,
정찬주 작가를 만나러 이불재로 향한다.

▶ ‘이불재(耳佛齋) ’ ‘솔바람에 귀를 씻어 부처를 이루리’

‘이불재’는 법정 스님을 비롯해 이해인 수녀, 임권택 감독, 박완서 소설가, 홍기삼 시인, 최인호 소설가, 이낙연 총리, 원각 스님, 원산 스님, 혜국 스님, 수불 스님, 정념 스님 등 많은 문인과 유명인들이 다녀간 곳으로 감흥을 얻거나, 에너지를 받아가는 곳으로 이름이 나 있다.
이 봄, ‘이불재’의 주인장, 정찬주작가와의 아주 귀한 만남을 가져본다.

‘이불재’를 천천히 오르다보니 고즈넉한 산사인 쌍봉사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는 것만으로도 글이 저절로 써질 것 같은 고요함이다. 정찬주작가가 기거하고 있는 곳은 ‘이불재’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불린다.

‘이불재’의 뜻은 ‘물소리 바람소리에 귀를 씻어서 진리를 이루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불재’는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만큼 ‘이불재’를 방문한 이들은 정찬주작가에게 “사계절 중 어느 계절이 가장 좋냐?”는 질문을 더러 하곤 한다. 정찬주작가에게 이불재의 사계절은 다 좋다. ‘이불재’에서는 사계절이 가진 온전한 매력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봄에는 꽃들이 피고 지고, 여름에는 녹음이 푸르러서 좋고, 또 가을은 낙엽들이 져버린 나무들의 본래의 모습이랄까, 나목들의 쓸쓸함이 좋고, 겨울에 특히 광풍이 휘몰아칠 때, 혼자 세상에 서 있는 것 같은 존재감이 느껴져서 정찬주작가에게 이불재의 사계절은 그렇게 특별하게 다가온다.

굳이 사계절 중 하나만 꼽으라하면 정찬주작가가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다. ‘이불재’ 툇마루에 눈이 쌓일 정도로 눈보라와 광풍이 몰아치는 그런 날이라고 한다. 외지방문객들은 그런 날은 “외롭지 않느냐?”는 말을 묻곤 하지만, 오히려 외롭기 때문에 자연과 가까워질 수 있고, 또 외롭기 때문에 평소보다 많은 분량의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정찬주작가는 “ ‘이불재’에서 살아가는 힘이 뭐냐?”고 물으면 ‘외로움’이라고 답한다. 사람들은 외로움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사실은 외로움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이 현대인들의 불행이 아닌가, 작가는 생각한다.

▶제2의 고향인 화순과의 특별한 인연 이야기
정찬주작가는 보성에서 태어나 서울로 올라가 터를 잡고, 그곳에서 국어교사, 샘터 편집자로서 30여년을 생활하다 화순으로 낙향했다. 낙향한지는 올해로 19년째이다. 사실 화순으로 낙향하게 된 계기가 화순이 본향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대학시절, 데모가 심하던 때에 휴학을 하고 쌍봉사에 와서 소설 습작을 하곤 했는데, 그런 인연으로 쌍봉사 옆 ‘이불재’에 자리를 잡았다. 정찬주작가는 특히 인연에 대해 각별하다. 화순TV와의 특별한 인연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더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대화를 나눴으니 그 인연이 얼마나 깊어지겠냐?” 며 이내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 “서울 가까운 곳으로 가는 낙향은 사이비 낙향이다”

샘터사에 근무한 후 49세 되던 해, 이사로 승진을 하거나, 부장으로 그대로 남아있느냐, 하는 분기점에 와있었는데 당시 가만히 생각해보니 직장인으로 성공하는 것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작가가 되지 않았느냐, 이제 더 망설이지 말고 화순으로 내려가서 소설을 쓰자 다짐했다고 한다. 때마침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것이 당시 성철스님의 일대기 ‘산은 산 물은 물’이 민음사에서 나와 베스트셀러 반열에 서게 됐고, 그 후 경제적 여력이 생겨 ‘이불재’를 짓고 낙향하게 됐다.

당시 정찬주작가의 주변 지인들은 “서울이 가까운 남양주나 안양에서도 전원생활 분위기를 낼 수 있으니 그곳으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고, 또 어떤 친구는 “글을 쓰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갔는데 3년 만에 다시 올라왔다” 며 멀리 가는 것을 만류했다.

하지만 정찬주작가는 “서울 가까운 곳으로 가는 낙향은 사이비 낙향이다” 며 농담을 던졌다.
산속 깊이 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낙향이 아니지 않느냐, 낙향을 결심한 정찬주작가는 화순 이양 땅에 뼈를 묻을 생각을 하고, 다음날 바로 이양면사무소에 전입 신청을 했다.

▶없을 무, 물들 염 ‘無染’ 세상에 살되 물들지 말아라

‘이불재’는 북향이다.
그 이유가 낙향을 한 후, 쌍봉사 위쪽에 ‘이불재’를 지으면서 매일 천년고찰을 내려다본다는 것이 무례한 일이다는 생각이 들어 ‘이불재’를 북향으로 틀게 됐다고 한다.
스승인 법정스님이 오셔서 이런 말을 했다.
“무염거사, 왜 집이 북향이야?”그래서 사연을 말씀 드렸더니,
“그래 잘했어. 쌍봉사를 보고 지었으면 쌍봉사 경비초소지 뭐”
그렇게 유머로 받아치신 일화가 있었다.
정찬주작가와 법정스님과의 오랜 인연은 샘터사 시절부터다.

법정스님은 샘터사에 연재를 계속 했고, 그 연재물을 모아서 10여권 산문집을 발간하게 됐다.
당시 정찬주작가는 법정스님의 담당자여서, 스님 원고도 받고, 책도 내드리게 되었다.
책을 내기위해서는 송광사 ‘불임암’을 1박2일로 다녀야했는데, 스님에게 감화를 받고 어느 날,
법정스님께 제자 되기를 청했다. 그 후 스님으로부터 ‘무염’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불임암’에 가면 법정스님이 손수 만드신 일명 ‘빠삐용’ 의자가 있다.
스님은 때때로 빠삐용 의자에 앉으셔서 “내가 잘 살고 있는가?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 않은가? ” 그렇게 자문을 하시곤 했다.

‘이불재’에도 법정스님의 빠삐용 의자를 본떠 정찬주작가가 직접 만든 빠삐용 의자가 있다.
하지만 정찬주작가는 법정스님을 생각해서 의자에 잘 앉지는 않는다.
다만 그 역시, 의자를 보면서 스님과 같이 “내가 정말로 잘 살고 있는가?”하면서 때때로 자문 하곤 한다. 이렇듯 살아생전 이불재를 찾곤 했던 법정스님의 말씀과 마음은 ‘이불재’ 곳곳에 향기처럼 묻어있다.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은 무언인가?

정찬주작가는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을 성찰하게 되고, 또 나의 부족한 면을 채우고, 채워야 될 면을 탐구하는 자기 수행이 길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후배들에게 이야기 할 때도 “우리가 결국 글을 쓰는 것은 자기 수행이자, 궁극적으로는 구원이 아니겠느냐?” 는 이야기를 곧잘 하고 한다.

가령, 작가들이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부를 누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내가 이 세상에 왜 존재해야 하는가? 그 어떤 당위성을 확인하는 것이 글이 아닌가. 작가는 생각한다. 또 작가로서의 몫은 자기 수행을 해서 자기 구원을 하는 것으로 귀결이 되는 것이 다. 그것을 자각할 때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원동력이 생기기 않을까.

▶화순에 내려와 보니 바로 내 눈앞에 길이 있다.

정찬주작가는 단 한 번도 연재를 놓아본 적이 없을 만큼 ‘글농사’에 대한 절실함을 가지고 있다. 작가로서 글은 써놓고 보면 늘 아쉽고 부끄러운 면이 있기 마련이다고 한다. 또 정찬주작가는 독자들에게 “나의 대표작은 내일 쓰는 작품이다” 라고 늘 말한다. 수행자가 붉은 동그라미 즉, 공휴일이 없이 수행하듯이 작가도 끊임없이 써야한다.

또 평소 지인들에게도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작가가 글쓰기를 게을리 하면, 前자를 붙여야 한다. 前소설가, 前시인 ”
정찬주작가는 후배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수행을 하듯이 계속 쓰다 보니 50권, 60권 다작이 됐고, 특히 낙향을 해서 ‘이불재’에서 글을 쓰게 되니 그 양이 배가 됐다. 서울에서 10권을 썼다면, ‘이불재’에서는 20권을 쓰고 요즘도 일년에 2권~3권의 책을 반드시 발간한다.

화순에 내려와서 맨 처음 쓴 장편소설이 화순의 역사와 인물과 문화에 대해서다. 작가들이 자기 고향으로 낙향해 고향의 인물과 역사를 소설로 쓴다면 결코 글을 쓰는 소재가 궁하지 않을 것이다. 평생 세상을 바꾸는 글을 써왔고, 앞으로도 그러하고 싶다는 작가의 말이 한 겨울 서릿발처럼 가슴에 꽂힌다.

▶“길 끝나는 곳처럼 보였던 ‘이불재’에 길이 있더라.”

초록빛 마음으로 ‘이불재’에서 ‘다향심’을 마시며 평상심, 청정심을 얻어간다고 이불재를 방문한 이해인 수녀는 말했다. 그랬다. ‘이불재’에 오면 누구나 마음의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

연초록의 대숲사이로 이름 모를 새소리가 지저귀는 ‘이불재’의 이른 봄은 계절의 변화를 온 몸으로 실감케 한다.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며 이불재 처마 끝 풍경소리로 번뇌를 씻고, ‘글농사’를 지으며 ‘무염’을 실천하는 정찬주 작가의 부지런한 삶이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에게 죽비소리처럼 큰 울림이 된다.

숨 가쁘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잠시 쉼표가 되는 ‘이불재’와 정찬주 작가의 만남은 이봄, 새로운 감흥과 다시 살아갈 에너지를 얻기에 충분하리라.



정소윤 기자 mire5375@hanmail.net        정소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