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1위가 독도에 가는 것이었다.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가 나오면서 독도는 내 머릿속에 오래 자리를 잡게 되었다. 언젠가는 꼭 한번 독도에 가보리라는 희망을 품고 기회를 기다려왔으나 산골짜기에서 태어나 산골에만 살았기에 먼 나라 이야기였다. 학창시절이 가고 성인이 되고 어느덧 지천명이 넘었지만 세상살이를 견디어내느라 독도는 여전히 먼 곳이었다.

하늘의 이치를 안다는 지천명이 넘다 보니 살아온 시간을 뒤돌아보면 그 시간이 순간이었음을 알듯이 세월이 빨리 간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독도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회만 포착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모임에서 여행지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독도를 추천하게 되었고 내 로망도 부풀어 올랐다.

선수 선미 출항 준비와 함께 배는 울릉도를 향해 출발했다. 울릉도는 나를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몇십 년간을 벼루다 온 곳인데 쉽게 받아주면 안 되지 안 되고 말고 혼자 중얼거리다 보니 그래도 시간을 흘러 도동항에 도착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 풍랑 때문에 예정보다 연착되어 1시간 늦게 도착했다.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여객선을 반기는 갈매기다. 이국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울릉도. 높이 날아오르는 갈매기처럼 날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힘이 난다.

멀미 때문에 매슥거리는 속을 달래기도 전에 풍랑 때문에 내일 독도행이 어렵다고 한다. 하늘이 허락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지는데 다행히 늦은 점심을 간단히 먹고 오늘 3시에 독도행 배가 출발할 수 있다고 우리를 재촉한다. 멀미로 만사가 귀찮은데 다시 배를 타야 하다니 이것이 뭔 일인가 싶어지고 배는 고픈데 밥은 먹을 수가 없다.

그래도 여기가 어딘가? 울릉도 아닌가? 여기까지 와서 독도에 못 간다는 것보다는 힘들어도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속을 달래 본다. 갈매기처럼 높이 아름답게 날아올라야지.

아무리 힘들어도 독도는 가야 한다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저동항으로 가는 차에 올라탄다. 죽기 아니면 버티기 작전이라는 마음으로 독도행 배에 올라탔다. 한번 멀미를 겪었으니 이번에도 견딜 수 있으리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배를 타고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향해 배는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는 87.4㎞ 차로 간다면 가까운 거리이지만,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포항에서 울릉도로 오는 사이 멀미를 했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진다. 천연기념물 제336호로 지정된 독도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줄까? 독도를 예전에는 우산도, 삼봉도, 가지도, 석도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름마다 사연이 있다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멀미가 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도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독도는 우리를 밀어내지 않고 반갑게 손짓으로 부르는 것 같다. 저기 멀리 독도가 눈으로 들어온다. 드디어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독도다. 1시간 30분이면 도착한다고 했는데 2시간 30분이 걸렸다.

제일 먼저 갈매기들이 우리를 반긴다. 주어진 시간은 30분, 독도에 발을 내디딘다. 공기는 맑고 신선하지만 바람은 차다. 찬바람에 몸을 맡기며 오는 시간에 비해 너무도 짧은 30분을 위해 수없이 사진을 찍고 눈에 넣는다. 여기가 어디인가? 독도란다. 50년을 넘도록 기다려 온 이곳에서의 찰나 앞에 마음이 시리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 독도에 가는 것이 내 버킷리스트 1위였다. 독도는 대한민국 최동단의 섬이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곳으로 사람이 살기에는 부적절해 보인다. 하지만 이 독도는 우리의 자존심이라고 한 뜻을 독도에 오면 알 수 있다. 독도를 지키고 있는 경비대원들의 모습이 늠름하다. 30분이란 시간이 1초처럼 짧게 느껴지는 순간이 지나고 돌아갈 시간이다. 어떻게 기다려온 오늘인데 이렇게 빨리 돌아서야 한다니 아쉬움이 남는다.

돌아오는 배에서 보니, 바다는 아름답게 노을이 지고 있다. 풍랑이 심할 줄 알았는데 밤바다는 고요하기만 하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파도도 조용하다. 어둠이 스며들고 창밖을 볼 수 없지만. 이 고요는 뭘까? 풍랑 뒤의 고요, 풍랑만 있으면 이 고요를 고요만 있으면 풍랑을 모르겠지. 홀로 앉아 독도의 의미를 되새기라는 것일까? 인생도 순탄하기만 하면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겠지. 때 얼룩에 찌들수록 인생다워진다는 시구절도 있지 않는가.

다행히 배 멀미가 나지 않았고, 바다도 고요도 깊어진다. 울릉도행 배를 탈 때는 그렇게 온몸으로 거부하더니, 독도행 배는 긴 기다림에 목말라한 우리의 마음을 알았을까? 쉽게 받아주고 말없이 고이 보내준다. 그 모습이 그리운 이의 얼굴처럼 안쓰럽다. 독도는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다. 독도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을 우리의 마음을 바다는 헤아렸을지도 모른다.

천혜의 아름다운 섬 독도가 거기에 있어 오늘의 몫으로 정해진 하루가 저물어간다. 마음이 오늘 본 독도의 모습으로 가득히 채워진다. 몇 해쯤 가지 못해도 독도는 제 자리에 그렇게 있을 것이다. 우리의 자존심으로 우뚝 서 있을 것이다.

- 隨筆약력 -
․ 화순초등학교 60회
․ 2008년「현대수필」 등단
․ 2008년「열린시학」 등단
․ 저서 시집『물고기자리』,『엄마의 재봉틀』
․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 현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전담강사
․ 현대수필문인회원
․ 한국작가회원
․ 동천문학상, 열린시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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