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섬 울릉도에 도착했다. 배 멀미 때문에 속이 뒤집히는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갈매기들은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군무를 펼친다. 황홀한 이 순간을 위하여 참 많이 기다렸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에만 살다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울릉도에 온 것이다. 맑은 하늘빛을 닮아 더 아름답게 깊어진 바다처럼 울릉도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한때는 강원도 땅이었다가 경상남도로 편입된 이 땅을 참 그리워했었다. 먹을 것도 많지 않아 눈이 녹기 시작하면 산에 올라가 춘설을 뚫고 올라온 명이나물을 삶아 먹으면서 생명을 이었다는 이곳이 왜 그리웠는지 모르겠다. 전라도 먼 땅에서 이곳은 그저 이유 없이 그리워해도 되는 그런 곳이었다.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면 천혜의 풍광을 벌 수 없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설마 하면서 계획한 여행이다. 울릉도에 도착하였으나 일정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맑은 하늘인데도 폭풍이 온다는 이유로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다. 출발부터 도착까지. 수박 겉핥기식으로 서둘러지는 시간마저도 소중하게 생각되는 순간이다. 살면서 이렇게 시간이 소중하게 느낀 적이 있었는가 싶어진다.

울릉도에 도착하여 풍랑이 온다는 이유로 꿈에 그리던 독도를 먼저 다녀오게 되었다. 아름다운 바다에 갇힌 눈부신 울릉도가 첫인상이었다면 독도를 만나고 돌아온 두 번째 풍경은 어두운 밤에 갇혀 버린 울릉도였다. 독도에 대한 아쉬움을 간직한 채로 어둠에 갇혀버린 울릉도의 밤은 빗소리와 맑은 공기 그리고 따스한 방구들이 있었다. 속절없이 웃음꽃을 피워내는 유년의 어느 한때처럼 울릉도의 깊어진 밤은 잠 못 이루는 사춘기 소녀처럼 설레임으로 가득 차올라 밤을 지새웠다.

하룻밤을 보내고 배편에 맞추어져 있는 짧은 시간에 울릉도 버스투어를 하기로 한다. 울릉도는 화산체의 봉우리 부근이라고 해안가 근처 지질은 가장 흔한 화산암으로, 현무암으로 구성되어 있고 윗부분은 조면암, 음회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섬의 한가운데에 성인봉이 솟아 있고, 비탈면에 칼데라 화구가 함몰하면서 형성되었다는 나리분지가 있다는데 그 주변에는 외륜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고 한다.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지질 때문에 비교적 길이 좁아 조금씩 서로 양보하면서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해안가를 따라 버스가 움직이는데 이번에 울릉도 일주도로 개통기념 전국마라톤 대회가 열린다고 하여 복잡하고 더 불편했지만, 서두르지 않는 느림의 미학을 체험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화산암으로 인한 바위들에 명칭이 붙여져 있다. 거북바위, 사자바위, 코끼리바위, 촛대바위 등 버스로 한 바퀴 도는 사이에 시간은 총알처럼 빠르게 가고 있다.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평지라고 할 수 있는 나리분지를 향해 올라간다. 울릉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마을이 있다. 울릉도 개척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너와집이 있다. 오랜 숙원사업이기도 했던 울릉도 여행은 폭풍으로 인한 배편에 맞추어진 시간 때문에 허둥지둥하여 설레임도 아쉬움으로 간직해야 할 정도로 소중한 시간이 쉬지 않고 어디론가 흘러간다.

설레임도 안타까움도 접으면서 버스투어를 마친다. 배편 시간이 남아서 도동항 여객터미널 옆 행남해안 산책로를 하이킹하기로 한다. 해안절벽은 그 어떤 언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움 그 자체다. 다양한 지질 활동으로 인한 파도의 침식 작용과 풍화 작용으로 인해 아름답게 변한 산책로는 울릉도에 다시 오고 싶게 하는 곳이다.

사람들과 친해진 갈매기들의 군무는 탄성이 쏟아지게 한다. 과자를 던져주면 떼로 내려앉고 날아오르는 모습에 눈을 어디로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환상적이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손에 과자를 올려놓으니 손 주위로 날아와서 과자를 물고 날아오른다. 갑자기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마저 든다. 내가 언제 갈매기의 친구인 적이 있었던가. 오늘은 누가 보아도 나는 자연의 일부로 화보의 한 장면으로 산책로를 점령한다.

깎아지른 해안절벽과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하니 신선이 따로 없다. 자화자찬 모두가 신선이 되어 침식이 빚어낸 절경 속으로 빠져든다. 비췻빛 바닷물과 아름다운 길이 가히 압도적이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울릉도를 도보로 투어를 해보고 싶다. 얼마쯤 바다에 갇힌 울릉도에 머물러 보고 싶다. 이 수려한 바닷길을 하염없이 걸어서 신선이 사는 곳으로 가보면 어떨까? 환상은 또 다른 환상을 불러들인다.

예정된 시간표대로 움직여야 하는 안타까움은 더 큰 아쉬움으로 남고, 다시 못 올 것 같은 울릉도와 어떻게 작별 의식을 치루어야 할지 막막해진다. 설렘 반 두려움 반을 안고 몇 달 전부터 잡았던 이 여행길. 다시 올 수 있을까? 마음에 담아 두고 연인처럼 그리워만 하다가 겨우 오게 되었는데 아쉬움만 더욱더 커진다.

아름다운 이국적인 섬. 허락된 시간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배안에서 울릉도는 배 멀미를 했던 그 시간도 잊게 하고 또다시 가고 싶은 그리운 곳으로 만들어버린다. 울릉도에 발을 못 붙이게 할 정도로 멀미 때문에 힘들었던 그 시간은 바다의 포말 속으로 사라진다. 풍랑이 심해질 거라던 바다는 더 고요 속으로 빠져들고 바다는 거짓말처럼 해맑은 얼굴로 여행객들을 고이 돌려보낸다. 돌아보지 말라는 전설도 있지만 문득 돌아보니 울릉도는 저만치 사라지고 다시 나는 그리움에 사무친다.


- 隨筆약력 -
․ 화순초등학교 60회
․ 2008년「현대수필」 등단
․ 2008년「열린시학」 등단
․ 저서 시집『물고기자리』,『엄마의 재봉틀』
․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 현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전담강사
․ 현대수필문인회원
․ 한국작가회원
․ 동천문학상, 열린시학상 수상


화순일보 mire537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