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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8일(토요일)

치유의 문학 수필이 있는 이야기

청려장
<隨筆> 임미리
2020. 02.09(일) 22:26확대축소
<隨筆> 임미리


지붕 색깔이 바뀌었다. 오랜만에 시골집에 들렀는데 달라진 지붕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지붕이 낡아 비가 샌다는 말을 듣고 마음 한쪽이 불편했는데 그 사이 지붕이 바뀌어 있다. 붉은색 기와지붕이었는데 비둘기색 기와지붕으로 바뀐 것이다. 빗물이 샐 염려가 없어서 좋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흘러 들으며 돌아서 나오는 길, 문득 돌아보니 아버지의 허리가 더 구부러져 있다.

팔순이 넘은 아버지는 식습관이 고기를 싫어하셔서 거의 육식을 하지 않는다. 어쩌다 드시는 것이 오리고기만 조금 드신다.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시니 허리가 개미허리처럼 잘록하다. 뱃살이 없어서 힘도 없어 보여 보는 마음이 불편하다. 오래 걸을수록 아버지의 허리가 구부러질 수밖에 없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자식으로서 마음 한쪽이 시린데 자식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이제 지팡이가 필요할 나이라고 해도 아버지는 필요 없다고만 하신다. 아버지가 아무리 허리를 꼿꼿하고 세운다고 해도 몇 발자국 못 걷고 기억자로 허리가 구부러지신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엄마가 지팡이의 필요성에 대해 말을 하면, 그 때는 허리를 펴고 걸으신다. 언제 구부러졌냐는 듯, 아버지는 구부러진 허리를 위해 지팡이를 짚고 걸으면 편할 것을 아실 텐데 굳이 거절하시는 속마음을 알 수가 없다.

한 번은 아버지 지인이 특별히 지팡이를 가지고 와서 선물로 드렸는데 아버지는 아직은 내 나이가 지팡이를 짚고 다닐 나이가 아니라면서 도로 가져가라고 돌려보낸 적도 있다. 지인은 얼마나 무안했겠는가. 어느 날인가는 아버지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서 엄마가 여기저기 찾아 나섰다가 깜짝 놀라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고 하신 적도 있다.

아버지가 지붕 위에 올라가서 지붕을 수리하고 계셨다고 엄마는 아버지가 걱정되어 딸년을 보면 늘 하소연이다. 아직도 열여덟 사춘기 소년처럼 젊은 줄 아는지 아직도 건설적인 일을 하려고 해서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어느 날인가는 아버지의 걷는 모습이 너무 불편해 보여서 등산용 스틱을 드린 적이 있다. 제발 이것이라도 짚고 다니면서 허리를 펴고 걸으시라고 말씀드렸는데 아버지는 지팡이는 짚지도 않고 걸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앞장서서 걸으셨다. 물론 얼마 못 가서 저절로 구부러진 아버지의 허리는 어느새 기억자로 바뀌어 있었다.

지팡이는 어른이 지니는 존경과 권위의 상징일 수도 있으려면, 아버지가 결코 거절하시는 이유가 뭘까? 옛말에 50세가 되면 자식들이 부모에게 만들어드린다고 해서 가장(家杖), 60세가 되면 동네에서 만들어 준다고 해서 향장(鄕杖), 70세가 되면 나라에서 만들어 준다고 해서 국장(國杖), 80세가 되면 임금님이 내려준다고 해서 조장(朝杖)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송순은 삼언가에서 “부여장 송백년(扶黎杖 送百年)”이라고 읊으며 청려장을 짚고 백년을 보내리라고 노래했다.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지팡이로는 도산서원에 소장된 퇴계 이황 선생이 쓰던 청려장이라고 한다. 오래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청려장을 선물했다고 한다. 지금도 노인의 날이면 대통령 명의로 명아주의 줄기를 말려서 만든 청려장을 100세 이상의 어르신들께 전달하고 있다.

늙을 노(老) 자를 보면 흙(土)에 막대기(/)를 꼽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노인이나 나이가 많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노(老) 자는 평생 논밭을 갈아서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 허리가 굽어 버리고 늙어버린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이 노인처럼 느껴져서 싫으셨을까? 나이가 먹어 노인이 되는 일이 아무리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해도 아버지의 마음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아직은 청춘 인지도 모를 일이다. 몸이 늙었다고 마음까지 늙을 수야 없지 않겠는가.

한 부모 열 자식 키울 수는 있어도 열 자식 한 부모 모시지 못한다고 했던 옛말이 하나도 그른 것이 없다. “효(孝)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라고 했다는데… 뭐 하나 하는데도 이것저것 생각하고 재느라 부모는 항상 뒷전으로 물러나기 일수다. 내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 마음 안다고 하는데 내 자식에게 쏟는 정성을 생각하면 부모도 내게 이리했거늘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하는 것이 죄송스러워진다.

여고시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버지는 나를 마중을 나오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농사일에 지친 몸을 이끌고 늦은 시간까지 주무시지도 못하고 계시다 늦게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는 딸년을 마중 나오셨다. 그때의 아버지는 혼자서 어두운 밤길을 걸을 수 없는 내게 지팡이가 되어 어두운 밤길을 안내해 주셨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의 지팡이가 되어야 할 나이가 된 것은 아닌가 싶다.

지팡이도 싫다. 육식도 싫다. 여전히 들로 밭으로 다니시느라 더 굽어지는 아버지의 등을 무슨 재주로 펴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이제와 어떻게 아버지의 지팡이가 될 수 있을지. 다만 나라에서 청려장을 내려주시는 그날까지 아버지의 안위를 위해 두 손을 모은다.

- 隨筆약력 -
․ 화순초등학교 60회
․ 2008년「현대수필」 등단
․ 2008년「열린시학」 등단
․ 저서 시집『물고기자리』,『엄마의 재봉틀』
․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 현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전담강사
․ 현대수필문인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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