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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16일(일요일)

치유의 문학 수필이 있는 이야기

재잘거림 사이로 거꾸로 매달려보니
<隨筆> 임미리
2020. 06.13(토) 19:07확대축소
隨筆 임미리


동구리 저수지에 오른다. 오늘은 하늘이 흐리다. 비가 올 것처럼 구름이 해를 가렸기 때문이다. 해질 무렵이면 동구리 저수지에 노을이 지면서 하루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흐린 날씨 때문에 아름다운 노을은 볼 수 없을 것 같다. 친구가 김밥과 함께 보온병에 차를 담아가지고 왔다. 우리는 의자에 앉아 저수지를 바라보며 김밥을 먹고 차를 마신다. 초여름의 저녁 날씨는 서늘하면서도 후덥지근하다.

날씨가 흐려도 후덥지근해도 괜찮다. 이 소중한 시간이 있어 하루를 마감하는 재잘거림이 더없이 좋다. 보온병은 무려 2리터짜리다. 아무리 차를 따라 마셔도 보온병은 바닥을 쉽게 보여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마시고 또 마신다. 우리가 앉아 있는 앞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느리게 그리고 빠르게 지나간다. 차를 마시면서 바라보니 같은 사람들이 저수지를 쳇바퀴 돌듯 몇 바퀴씩 돌고 돈다. 우리는 그날이 그날 같은 사는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다.

의미 있는 이야기 사이로 멍 때리는 시간이 지나가기도 한다. 친구는 요즘 들어 자신의 살아가는 모습을 성찰하는 기회가 늘었다고 한다. 힘들게 보냈던 지난날에 언니들에게 끝없이 받으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요즘에 언니들에게 받은 것을 언니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되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받으면 꼭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떤 방법으로든 갚아야 하는 것 같다면서 이제 나이 들어 보니 그것을 깨닫게 되는 마음공부를 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는 얼마큼 힘든 과정을 살아내야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아무 걱정 없이 건강하게 여유롭게 주어진 삶에 감사해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삶에 무디어지고 있고, 친구는 삶을 성찰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서 감수성이 예민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주어진 삶을 상황에 따라 맞추면서 그냥저냥 살아가고 있다

가끔은 주어진 시간이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누구를 만나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버킷리스트처럼 순위를 정한다면 첫 번째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날 것인가를 혼자서 생각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순위를 가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닥치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한 맺힌 인연이라면 풀어야 할 것이고, 더 이상 이승에서 만나서는 안 될 인연이면 이별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다음 생을 기약해야 할 인연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필시 사람뿐이겠는가. 일의 순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연 따라 시절인연이 되면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무디게 살고 있다. 다만 내 행동에 대해 관찰해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사람들한테 냉정하다는 소리도 듣게 된다. 물론 그런 소리를 들으면 서운한 마음도 든다.

생각해보면 김상운의 저서 「왓칭」을 읽게 되면서 내 삶에 조금씩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슬픈 일도 괴로운 일도 감정이입을 시키지 않고 그냥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렇게 하려고 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지는 않지만 나를 관찰하는 일을 하면서 내 감정의 찌꺼기를 버리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몰입되어 있는 그 순간이 지나면 감정이 변하게 되어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감정의 찌꺼기를 얼마나 많이 버리고 버려야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지만 재잘거림 사이로 2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사람들의 행동에 대응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 가능해질까. 어떤 행동에 대해 대응하는 사이 우리는 이미 자신의 내면을 상처 입히면서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친구를 먼저 보낸다. 나는 혼자서 저수지를 한 바퀴 돈다. 돌다가 문득, 거꾸로 매달리기 운동기구를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춘다. 조심스럽게 운동기구를 잡고 거꾸로 매달려본다. 흐린 하늘은 어둠에 갇히고 별도 달도 없다. 매달려보니 사람들의 얼굴이 아니라 다리가 보인다. 나뭇가지가 아니라 나무 밑동이 보이고, 자동차 모양이 아니라 바퀴가 먼저 보인다.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운동기구를 잡고 매달린다.

거꾸로 매달려보니 알겠다. 그동안 사는 일에 매달려 왔음을,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왔음을. 움켜쥔 것들을 놓지 않고 살아왔음을 알겠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운동기구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니 하늘이 빙그르르 돈다. 나는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겠지만 내 삶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할 것들이 많음을 깨닫게 된다.

얼마나 버려야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화두를 안고 돌아오는 길 저수지를 바라본다. 하늘에 달도 없는데 저수지 안 달 속의 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에서 더욱더 힘껏 방아를 찧고 있다.


-隨筆 약력-
·화순초등학교 60회
·2008년「현대수필」 등단
·2008년「열린시학」 등단
·저서 시집 『물고기자리』, 『엄마의 재봉틀』, 『그대도 내겐 바람이다』
·수필집 『천배의 바람을 품다』 등
·문학박사
·현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전담강사
·한국작가회의 회원
·동천문학상, 열린시학상 수상
·현대수필문인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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