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나는 언제나 바람을 좋아하고 바람에 담긴 중의적 의미를 사랑한다.

바람(風)이 주는 자연의 생명력과 바라는 마음의 순수하고 행복한 순간의 바람을(祈願) 작품에 담아 표현하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정성을 다해 기원(祈願)하는 마음, 바람은 자연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많이 닮아 있으며 바람으로 인해 살아가고 살게 하는 진정한 기쁨과 행복은 음미 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바람(風)과 바라는 마음의 바람은(祈願) 자연의 순리이고 인간의 본능임을 나는 알고 있다.

바람은 자연을 순환시키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아주 특별하고 신비한 힘이 있다. 나는 그것을 어린 시절에 알았다.

어릴 적 나는 새벽을 가장 일찍 여는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세상이 고요한 검푸른 시간 할머니는 경대(鏡臺) 앞에서 의식처럼 정갈하게 동백기름과 참빗으로 쪽 지으시고, 댕기머리를 곱게 빗긴 내 손을 잡고 다른 한손엔 주전자를 들고 날마다 푸른 새벽 빗장을 여셨다.

그때 온몸으로 느껴지는 처음 맞는 새벽바람이 좋았고 나와 할머니 둘뿐인 것 같은 푸르스름한 세상이 좋았다.

종종걸음으로 다 달은 곳은 진각국사의 탄생 설화가 전해지는 맑고 시원한 물이 마르지 않는 신비의 샘 ‘자치샘’ 그렇게 할머니는 누구보다도 일찍 샘물을 길러와 촛불과 정화수(井華水)를 준비하신 뒤 한참을 기도하셨다.

아마도 먼저가신 삼촌들의 극락왕생과 가족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기도하셨으리라.

나는 먼동이 트기 전 창호지에 비친 푸르스름과 노란기 가득한 주황색 벽면 그리고 바람과 숨에 흔들리는 촛불에 비친 할머니의 그림자가 좋았다. 그 시간은 아직도 눈에 선명하다.

가장 신성한 시간이며 할머니의 정화된 아픔과 동시에 간절한 숨을 느낄 수 있는 위안과 안도의 시간이었다.

<작품> 바람 불어 좋은날

내가 지금까지 건강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음은 할머니의 바람(祈願) 때문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자신이 아프시기 전까지 철따라, 명절 마다 꼭 색동 한복과 꽃신, 금박댕기를 손수 지어 입혀 주셨다.

색동의 의미처럼 복의 영원함과 고운 길, 꽃길만 가길 바라신 할머니의 염원이 담긴 바람이었으리라. 할머니와 나의 종교는 다르지만 늘 기도로 새벽을 여는 그 마음은 하나로 닿아있는 것 같다.

삶-기원, 바람 불어 좋은날의 주제를 오방색 색동으로 작품에 표현하는 건 어쩌면 어릴 적 기도하시던 할머니의 영향인 듯하다.

나는 여전히 바람과 바람이 부는 순간, 바람의 결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 결에 전해지는 계절의 향기와 내가 기억하는 행복한 추억의 아련함에 설레고 취하는 게 좋다.

또한 과거의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의 바람을 현재 일상과 연계하여 바람으로 작품에 담을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 과정이야 말로 나 자신을 치유하는 순간이고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정리하고 차곡차곡 저장하는 행복한 시간이다.

이러한 도정(道程)을 통해 내가 숨 쉬고 내 이웃의 불안 의식에 조금이나마 위안과 행복이 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다.

-김왕주 약력-

▲화순 출신
▲개인전 8회(광주 부산 청주)
▲국제아트페어(서울 부산 광주 대구 울산)
▲그 외 다수의 단체전 참여
▲현 한국미술협회회원
굉주미술협회회원
www현대미술가회회원


화순일보 mire537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