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따 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우선 당상(堂上)은 조선 시대에 정삼품 상(上)이상의 품계에 해당하는 벼슬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혹은 정삼품 이상의 벼슬아치들이 망건에 달고 다니던 옥관자, 금관자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따 놓은 당상’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는 표현으로 혼용된다. 이 말의 어원은 임금이 어떤 사람을 위해 미리 ‘당상’이라는 벼슬자리를 따로 떼서 놓았으므로 그 사람이 당상관(堂上官)이 된다는 것은 조금도 염려할 것이 없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하여 ‘따 놓은 당상’은 ‘일이 확실하여 조금도 틀림이 없음’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주요 정당의 비례대표 1번이 되면 그 사람이 의원이 되는 것은 그야말로 ‘따 놓은 당상’인 것이다. 현재 각 여당과 야당에 대한 지지세가 강한 영남과 호남에서는 당에서 후보로 선출되면 그 지역에서 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이 되는 것은 ‘떼어 놓은 당상’이 되는 셈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따 놓은 당상’ 자리가 많은 것이 정의로운 것인가? 어떤 사회가 정의롭다는 것은 ‘마땅히 행해져야 할 바른 길이 이행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남과 영남에서도 여당과 야당이 경쟁해서 단체장과 의원이 선출되어야 정의로운 모습인 것이다. 호남에서는 야당이, 영남에서는 여당이 ‘따 놓은 당상’ 식으로 단체장과 의원이 선출된다면 이는 결코 정의로운 모습이 아닐 것이다.어떤 사회가 ‘평등’하다고 했을 때 평등은 ‘권리나 의무에서 개인 간의 차별이 없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한 그릇의 자장면을 먹으면 자장면 공급가액의 10%의 부가가치세를 동일하게 내는 것은 평등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10%의 부가가치세는 가혹하지만 부자에게 10% 부가가치세는 아무런 부담이 없다. 평등만으로 그 사회가 정의롭다고 보기 어렵다. ‘공정’이라는 개념은 정의의 관점에서 공평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돈을 많이 버는 부자에게는 소득세를 많이 부과시키고, 돈을 못버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소득세를 적게 부과하거나 면제하는 것은 공정한 것이다. 하지만 ‘평등’과 ‘공정’만으로 그 사회가 정의롭다고 보기에는 여전히 어렵다. 진정으로 정의롭다는 것은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지는 불공정의 원인, 불공정을 일으키는 시스템적인 장벽을 제거시켜야 하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부잣집에 태어나도 가난한 집에 태어나도 동일 출발선에서, 동일 조건하에서 100미터 경주를 할 수 있어야 정의로운 사회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100미터 경주를 하는데 있어서 어떤 사람은 부양해야 할 부모를 태운 무거운 수레를 끌고 뛰어야 하고, 어떤 사람은 부모가 운전하는 벤츠위에 올라타서 손쉽게 경주를 한다면 정의롭다고 볼 수 없다. 100미터 경주의 출발선은 동일해야지 어떤 사람은 50미터 후방에서 부터 뛰어야 하고, 어떤 사람은 50미터 앞에 나가서 경주를 시작한다면 누가 정의롭다고 볼 것인가? 호남에서도 여당 출신이 동일 선상에서 경주가 가능해야 하고, 영남에서도 야당 출신이 동일 조건 하에서 경쟁할 수 있어야 정의로운 사회인 일 것이다. 특정지역에서는 특정 정당 사람들이 ‘따 놓은 당상’ 격으로 선출된다면 결코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사랑하고, 자발적으로 보존하고자 할 것인가? 항상 그렇지만 민주주의 사회는 시민의 수준만큼 그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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