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눈부신 날이다. 그림에 대해서 문외한인 나는 도서관 한쪽 끝에서 클로드 모네를 만났다. 아니 모네가 손짓하여 나를 불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순간의 빛을 영원에 담은 모네”가 눈 속으로 빠르게 들어왔다. 수련이 가득 그려진 옷을 입고 있는 모네의 환상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공중으로 흩어진 빛을 채취하고 있는 모네는 환하게 빛이 났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한 장씩 모네의 그림을 읽어간다. 햇살이 언제 어떻게 쏟아지느냐에 따라 그림의 빛은 다르게 표현되고 있었다.

빛을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햇살이 있을 것처럼 주위가 환해졌다. 대상이 아니라 대상에서 반사된 빛을 그렸다는 설명이 적힌 문장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절로 끄덕였다. 모네의 그림을 수긍한다는 일련의 몸짓인 것이다.

그림을 들여다보면 햇살이 반사된 물결은 출렁거리면서도 하늘을 가득 담고 있었으며 구름에게도 그림자를 선사해 주고 있다. 페이지를 넘기며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에 햇살궁전이 자리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요정이 숨어 있다가 유혹의 눈길을 보내며 금새 나타날 것 같은 빛의 일렁임은 보고 있는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햇살은 모든 사물을 동시에 비추기도 하지만 어느 한 부분만 비추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주의 깊게 관찰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모네를 읽으면서 나뭇잎에 햇살이 놀다가는 공간이 있듯 나뭇잎 뒤편에는 그늘이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느낀다.

빛은 공중에서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여기저기에 명암을 만든다는 문장을 만났을 때는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그것도 부족하여 형광 팬으로 푸른 줄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 솟아나는 것을 참아내야 했다. 도서관에 있는 책에 개인용도의 줄을 그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자세한 관찰이 모네의 그림을 살아 숨쉬게 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나뭇잎, 꽃잎이 만들어낸 명암까지도 그려내고 있다. 정해진 틀이 아닌 나름대로의 생각과 시선으로 작품을 보고 있었으며 동일한 대상을 보고도 시간을 달리하여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빛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또한 순간적인 영상을 오랫동안 시간을 두고 음미하여 그렸다는 부분을 읽고 나서 비로소 나는 글을 쓰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모네는 빛의 명암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는 모네를 읽으면서 글도 이렇게 써야 되겠다는 충동을 느낀다, 모네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누군가 걸었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 누구나 사용한 단어가 아닌 나만의 새로운 단어를 구상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똑같은 대상을 보고도 장소와 때에 따라 연작으로 작품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모네를 보고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낀다.


모네는 말년이 되어서도 붓을 놓지 않고 하루의 대부분을 수련을 그리는 데 치중하였다. 수련을 중점적으로 그리고 많은 수련 작품을 남기는 것을 보면서 수련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수련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고 꽃으로 피어난다. 사람으로 말하면 부조리한 주변 환경에 물들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지성인을 말하는 것이리라. 연꽃잎 위에 한 방울의 물을 떨어뜨려보면 안다. 연잎에 닿는 순간 데구르르 굴러 떨어지는 물방울, 수련을 보고 있으면 청정한 수행승을 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모네를 만나 한바탕 그림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그림을 가지고 놀았으니 화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무례하다는 소리를 듣게 될지 모르겠다.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나는 모네를 만나는 동안 행복했다. 아니 공중으로 흩어진 빛을 채취한 모네처럼 나도 공중으로 흩어진 빛을 끌어 모아 글로 표현하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려본다. 햇살이 더욱 더 고마운 날이다.

- 隨筆약력 -
․ 화순초등학교 60회
․ 2008년「현대수필」 등단
․ 2008년「열린시학」 등단
․ 저서 시집『물고기자리』,『엄마의 재봉틀』
․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 현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전담강사
․ 현대수필문인회원
․ 한국작가회원
․ 동천문학상, 열린시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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