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렸다. 봄비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설레인다. 이 비를 먹고 꽃이 핀다.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연초록 새싹이 올라온다. 빈 가지뿐이던 먼 산에도 살이 올라 통통해진다. 휴대폰이 울리고 봄비같이 촉촉한 엄마의 목소리, 꽃 피우시는 소리 향기롭다.

바쁘지 않냐고 묻더니 이리 와서 사진 좀 찍고 가라고 하신다. 거기가 어디냐고? 무슨 사진이냐고 했더니, 농협에서 주관하고 있는 노인대학 졸업식을 하는데 학위복을 입고 학사모를 쓴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싶다는 것이다. 무관심한 딸년 모르게 노인대학도 다니셨나,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 대답을 미루고 핸드폰을 끊었다.

생각해보니 엄마는 얼마 전에도 전화를 해서 복사꽃이 피었다고 예쁘게 활짝 피었다고 목소리에서 복사꽃 향기가 진동을 했었다. 그때도 사진을 찍고 싶어 전화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대답만 하고 시골집에 가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안 가면 엄마가 서운해하실 것 같아 모든 것을 제쳐두고 오늘은 가기로 결정을 하면서도 내내 망설여졌다.

다른 사람들은 가족들이 졸업을 축하해주러 올 것인데 엄마만 오지 않는 나를 홀로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조금 했다. 그리고 바쁜 시간을 쪼개어 다녀오기로 결정을 하고 봄날의 꽃집에 전화를 해 꽃다발 주문을 했다. 노인대학 졸업식인데 꽃다발을 준비해달라고 말하고 바쁘게 출발했다.

장날이라 가는 길이 복잡해서 졸업식장 주위를 맴돌다 졸업식이 끝날 시간에 맞추어 어렵게 도착했다. 다른 사람들은 회의실 식장으로 들어갔는데 나만 늦게 온 것 같아 속으로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어쩌면 오지 않는 딸년을 기다리며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살펴보니 학위증도 있고 학위복에 학사모를 쓰고 찍은 졸업사진도 있다. 졸업생은 총 80여 명 정도로 개나리반과 진달래반으로 “황금빛 장수대학” 졸업식이라고 한다. 어찌 되었든 엄마에게는 대학이란 단어가 들어간 대학 졸업인 셈이다.

생각해보니 엄마는 학교를 졸업하고 60여 년 만에 다시 받아보는 졸업장인 것이다. 만감이 교차했으리라. 다시 태어난 듯 졸업을 하고 무언가를 시작하는 듯한 설렘도 있었으리라. 졸업식 행사 때문에 봄비를 맞은 듯 설레었을 엄마. 꽃처럼 환하게 웃으시며 졸업식을 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졸업식 노래를 끝으로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회의실을 가득 채운다.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천만다행으로 꽃다발을 들고 있는 가족들이 별로 없다. 꽃다발을 엄마에게 안겨드렸다. 봄을 불러오는 개나리와 진달래처럼 이제 다시 시작을 알리는 엄마의 졸업장. 비록 하잘 것 없는 종이뿐이지만 엄마에게는 소중하고 고마운 시간이었으리라는 생각을 하니, 망설였던 시간도 죄송해졌다.

요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들이 대학을 보내준다고 해도 대학을 진학하지 않는다고 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고교 졸업자의 지난해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68.9%로 나와 있다. 지난 7년간 조금씩 대학 진학률이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졸업장이 밥 먹여주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내 세대와 다르고 부모세대와도 많이 다르다. 내 세대나 부모세대에는 학교를 다니고 싶어도 다닐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총 13강 과정으로 받는 졸업장이지만 엄마에게는 남달랐으리라. 그동안 없는 살림에 힘들게 자식들 공부시키면서 늘 해바라기처럼 자식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노인대학이지만 대학이라 이름 붙인 “황금빛 장수대학” 에서 이제라도 졸업을 했으니, 엄마는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소중한 봄비처럼 가족들에게 늘 봄비로 살아왔을 엄마. 그 봄비로 자라고, 꽃 피우고, 또 살고 있는 우리. 이제라도 엄마 자신을 위한 봄비가 되어 건강도 챙기시면서 사시기를 소망해본다.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 봄비가 될 엄마의 삶이 늘 향기롭기를 기도한다. 더불어 나도 누군가에게 봄비였다가 봄비였으면 좋겠다.


- 隨筆약력 -
․ 화순초등학교 60회
․ 2008년「현대수필」 등단
․ 2008년「열린시학」 등단
․ 저서 시집『물고기자리』,『엄마의 재봉틀』
․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 현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전담강사
․ 현대수필문인회원
․ 한국작가회원
․ 동천문학상, 열린시학상 수상


화순일보 mire537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