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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3일(일요일)

치유의 문학 수필이 있는 이야기

마른 꽃이면 족하리라
<隨筆> 임미리
2022. 06.18(토) 06:53확대축소
임미리 작가


"마님 같구먼 뭐시 어쩐다고?"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엄마의 마땅찮은 마음을 대변한 것 같았다. 나는 애써 모른 척하고 엄마에게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옷이 왔는데 입어보니 노인네 같다고 하신다. 단추도 몇 개만 달리다 말았으며, 당신을 “이제 정말 노인으로 만들었다.”라고 한마디를 던지셨다.

얼마 전 시골집에 갔었다.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블라우스를 사드리겠으니 골라보라고 말씀드렸다. 여름 블라우스는 대부분 하얀색 바탕에 무늬가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엄마는 연분홍빛이 도는 쉬폰블라우스를 고르셨고, 나는 기왕 산 김에 하나 더 사시라면서 내가 좋아하는 페이즐리 무늬를 권해드렸다. 면과 레이온이 혼합된 소재였는데 하얀색 바탕에 페이즐리 무늬가 있었고 앞판에 핀턱과 셔링디테일 포인트로 여성스러운 내추럴한 스타일이었다.
주문 다음날 엄마가 고른 연분홍빛 블라우스가 품절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내가 고른 페이즐리 무늬 원피스가 도착했던 것이다. 엄마는 옷이 도착했는데 블라우스를 입으니 노인네 같다고 전화를 하신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그 옷이 노인네 옷이 아니라 아가씨들이 즐겨 입는 브랜드 옷이라고 설명을 드렸다. 그래? 반색하시면서도 정말 맘에 안 든다는 것인지 애매한 말투에 이어 엄마는 옷을 반품하라고 하셨다.

택에 붙은 옷값을 말하면서 이렇게 비싼 옷을 어떻게 입느냐고 하셨다. 반품하면 왕복 택배비를 내야 한다고, 택에 붙은 가격을 다 준 것이 아니라 세일해서 얼마 안 주었다고 나는 설명했다. “아빠가 마님 같다고 하던데?”라고 말했더니, 엄마는 크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마땅찮은 목소리였다.

엄마는 얼마 안 있으면 산수(傘壽)의 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정신세계는 아직은 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계신 것이다. 사회통념상 65세 이상이면 노인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제 노인 맞는데 속으로 생각하면서 다음에 집에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럼 나는 어디쯤일까? 생각하다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은 진즉에 지났고 듣는 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이순이 곧 다가오는 나이다. 빨리 결혼한 친구들은 손주를 보아서 할머니 소리를 듣고 있다. 눈앞이 아찔했다. 이를 어쩌나 나는 엄마보다 더 심한 정신세계에 갇혀서 열여덟 꽃띠처럼 살고 있다. 아직도 생머리를 길게 풀어헤치고 청바지를 입고 다닌다. 흰머리카락이 보일까 염색을 하고 요즘 젊은 친구들처럼 살려고 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느 기점을 시작으로 거꾸로 먹는다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늘 해왔다. 어쩌면 오십을 기점으로 49세, 48세, 47세 이렇게 거꾸로 먹는다면 엄마는 지금 한창인 나이 20대 초반이 될 것이다. 인체의 외모는 늙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나이를 거꾸로 먹으니 마음은 더 젊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나이 먹으면 옛날이야기를 자꾸 하는지도 모른다. 옛날 그 시절, 젊었던 그 시절 이야기를 거침없이 사무치게 하시는지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노인네가 되는 것을 극구 거부하는 엄마나 이순의 나이를 눈앞에 두고 치장하는 딸년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엄마의 마음 자락 하나 헤아리지 못하는 딸년의 모습이 더 우습다. 지인에게 엄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함께 키득키득 웃었다. 나이란 숫자에 불과한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살고 있지만 정작 타인이 보는 눈이란 냉정한 잣대임을 실감한다.

인터넷을 접속하여 품절된 상품과 최대한 비슷한 블라우스를 골랐다. 엄마에게 블라우스를 다시 주문했다고 말씀드렸더니 싫은 내색은 없었다. 엄마가 말하는 노인네 같은 색깔이 아닌 레드 계열에 작은 플라워 무늬가 있는 쉬폰블라우스였다. 하지만 너무 붉은빛이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이번에는 너무 붉다고 싫어하신 것은 아닌지 가늠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상품을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갔다. 오늘 드디어 엄마의 밝은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울려 퍼진다. “엄마 색깔은 맘에 들고? 괜찮아?”라고 물었더니 전에 왔던 옷은 단추가 3개뿐이라 주름진 목이 훤히 드러나 보여 징그러웠다고 한다. 오늘 온 옷은 앞이 터져 단추가 목까지 채울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주름진 목이 감춰진다고 설명을 하신다.


엄마와 전화를 끊고 잠깐 생각에 잠긴다. 엄마는 노인네처럼 보이는 것보다 더 싫은 것이 살도 없이 깡마른 주름진 목선이 드러나는 것이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엄마는 여자였던 것이다. 늙음 앞에 조금이라도 주름을 감추고 싶었던 엄마의 속마음. 같은 여자인 나도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데 누가 이 늙음에 대해 관대해질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은 고인이 된 박완서 작가의 “마른 꽃”이란 단편소설을 얼마 전에 오디오북으로 들은 적이 있다.

"아무리 멋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닥칠 늙음의 속성들이 그렇게 투명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내복을 갈아입을 때마다 드러날 기름기 없이 처진 속살과 거기서 우수수 떨굴 비듬 … 엉덩이를 들고 뀌는 방귀, 제아무리 거드름을 피워봤댔자 위액 냄새만 나는 트림… 끝없는 잔소리”

젊은 시절 읽었을 때는 무심히 넘어갔던 부분이다. 마음은 젊었을 때와 다르지 않은데 많은 것들이 달라지는 현상 앞에 좌절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된다. 세월의 흔적이 드러나는 몸, 거울에 비친 아랫배의 참담한 모습이 “비틀어 짜 말린 명주 빨래 같은 주름살이 늘쩍지근하게 처져 있었다.”라는 글은 절창이었다.

여자가 나이 먹는다는 것을 마른 꽃으로 표현한 작가. 엄마나 나나 좋은 표현으로 마른 꽃이 되어가고 있다고 속으로 되뇌어 본다. 절대로 나를 보며 늙은 꽃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잘 마른 꽃이면 족하리라.



화순일보 mire537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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